가격을 좌우하던 엔비디아마저 서버값을 15% 넘게 올린 건 메모리값 상승을 더는 흡수하지 못했다는 신호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협상력이 그만큼 세졌다는 뜻이다. 다만 오른 계약가가 분기 실적에 반영되고 다시 배당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차와 확인 단계가 있다. 주가에 이미 기대가 반영됐는지, 인상이 몇 분기 이어지는지를 보고 판단하는 편이 낫다.

AI 반도체 시장에서 가격을 정하던 쪽은 엔비디아였다. 그런 엔비디아가 AI 칩·서버 가격을 15% 이상 올리기로 하고, 2027년 초 출하되는 베라루빈·그레이스블랙웰 시스템부터 적용한다. 원가로 들어가는 HBM과 서버용 D램 값이 그만큼 뛰어 더는 자체 흡수가 어려웠다는 얘기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주 입장에서 이건 나쁜 소식이 아니다. '갑'이던 엔비디아가 값을 올렸다는 건, 메모리를 파는 쪽의 협상력이 그만큼 세졌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버용 D램 계약가격은 2분기에 전 분기 대비 53~58% 올랐고, 3분기에도 13~18%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Rafael Minguet Delgado
메모리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세 곳이 사실상 나눠 갖는 시장이다. 여기에 AI 수요가 몰리는데 당장 생산을 크게 늘리기 어렵다는 점이 값을 밀어올린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도 공급을 바로 확대하기 어려운 구조가 협상력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한정된 설비를 수익성 높은 HBM에 집중하다 보니 범용 D램은 오히려 품귀가 됐다. 모건스탠리는 차세대 시스템에서 GPU가 차지하는 비중이 80%대에서 약 50%로 낮아지는 대신 메모리 관련 비용이 급증한다고 분석했다. 부품값의 무게중심이 GPU에서 메모리로 옮겨가는 흐름이다.
다만 계약가가 올랐다고 이번 달 실적이 곧바로 좋아지는 건 아니다. 메모리 가격은 분기 단위 계약으로 움직이고, 오른 값은 다음 분기 이후 매출과 영업이익에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 한 분기 잘 나왔다고 끝이 아니라, 인상이 몇 분기 이어지는지가 이익의 크기를 정한다.
수요가 유지돼야 한다는 전제도 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계속 늘어야 지금의 가격이 지탱된다. 값이 오른 만큼 세트업체가 구매를 미루거나 재고를 조절하면 상승세는 꺾일 수 있다.
실적이 좋아진다고 배당이 자동으로 늘지도 않는다. 늘어난 이익을 설비 투자에 쓸지, 부채를 줄일지, 주주에게 돌려줄지는 회사가 정한다. 배당은 보통 실적이 확정된 뒤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결정되기 때문에, 실적 개선과 배당 사이에는 또 한 번의 시차와 판단이 끼어 있다.
특히 메모리 회사는 호황기에 벌어들인 돈을 다음 세대 공정과 증설에 대규모로 투입해 온 이력이 있다. 이익이 곧 배당 확대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금 흐름이 좋다는 것과 내 수익률이 오른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주가에는 이런 기대가 미리 반영되는 경우가 많아, 좋은 뉴스가 나온 시점엔 이미 상당 부분 올라 있을 수 있다.
확인할 지표는 몇 가지로 좁혀진다. 첫째, D램·HBM 계약가격이 다음 분기에도 오르는지. 둘째, 분기 영업이익이 실제로 개선되는지. 셋째, HBM 공급 계약과 가동률이 유지되는지. 넷째, AI 데이터센터 투자 흐름이 꺾이지 않는지다. 이 지표들이 방향을 확인해 줄 때까지는, 헤드라인만 보고 비중을 급히 늘리기보다 흐름을 확인하며 대응하는 편이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