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합산 비중이 60%를 넘는 국내 ETF가 레버리지를 빼고도 50개를 웃돌 만큼, 지수형 상품만 담아도 이미 반도체 쏠림이 크다. 고평가 논란이 나올 때는 여러 ETF에 겹쳐 있는 반도체 실질 비중을 하나의 숫자로 합산해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적립을 이어갈지 비중을 줄일지 정하기 어렵다면, 기존 자산은 두고 새 적립금의 방향만 바꾸는 절충안을 기준으로 삼을 만하다.
반도체 ETF를 콕 집어 모으지 않았어도, 적립식 투자자 대부분은 이미 반도체에 크게 노출돼 있다. 한국거래소 집계를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합산 비중이 60%를 넘는 국내 상장 ETF가 레버리지를 빼고도 50개를 웃돈다. 코스피200을 추종하는 ETF도 두 종목 합산 비중이 60%를 넘는다.
'코스피200에 분산 투자한다'고 믿었는데 실제로는 절반 이상이 반도체 대형주인 셈이다. 올해 개인이 사들인 국내 주식형 ETF 순매수 자금의 79%가 반도체 관련 상품이었다는 집계도 있다.
Photo by Laura Ockel on Unsplash
점검의 출발은 '느낌'이 아니라 숫자다.
먼저 보유한 ETF마다 상위 구성 종목과 비중을 확인한다. 운용사 홈페이지나 거래소 공시에 매일 올라온다. 그다음이 핵심인데, ETF를 여러 개 담았다면 각 ETF 안의 반도체 비중을 합산해 본다. 반도체 ETF 하나, 코스피200 ETF 하나, 미국 기술주 ETF 하나를 모으고 있다면 서로 다른 상품처럼 보여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엔비디아가 겹쳐 실제 반도체 비중은 생각보다 훨씬 높다.
여기에 직접 들고 있는 개별 주식까지 더해 전체 자산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율을 하나의 숫자로 뽑아낸다. 이 숫자가 점검의 기준선이 된다. 국내 ETF는 한 종목을 최대 30%까지 담을 수 있지만, 지수를 그대로 따라가는 상품은 반기 점검 때만 이 기준을 맞추면 되기 때문에 그사이 특정 종목 비중이 더 높아져 있을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쏠림을 확인했다면 선택지는 크게 둘이다. 정답은 없고 성격이 다르다.
지금처럼 적립을 이어가는 쪽은 분할 매수의 힘을 믿는 방법이다. 매달 같은 금액을 넣으면 쌀 때 더 많이, 비쌀 때 더 적게 사게 돼 매입 단가가 평준화된다. 고점을 피하려 타이밍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게 장점이다. 다만 쏠림 자체는 더 심해지고, 반도체 업황이 꺾이면 포트폴리오 전체가 같이 흔들린다.
비중을 줄이는 쪽은 변동성을 낮추는 방법이다. 한 업종이 조정받아도 충격이 분산되고, 반도체가 쉬어 갈 때 다른 자산이 받쳐 줄 수 있다. 대신 파는 과정에서 세금과 수수료가 들고, 하필 조정 국면에 손절하거나 이후 상승을 놓칠 위험이 있다. 결국 또 다른 타이밍 싸움이 된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으로 꾸준히 모으는 사람에게는 한 번에 많이 파는 결정 자체가 부담일 수 있다.
둘 사이의 현실적 절충이 있다. 기존에 모은 반도체 자산은 그대로 두고, 앞으로 넣을 적립금만 다른 자산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다. 매도에 따른 세금과 타이밍 부담 없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반도체 비중이 낮아진다.
본인 기준은 이렇게 정해두면 흔들리지 않는다. 전체 자산에서 반도체 비중의 상한선을 미리 정하고(가령 50%), 반기에 한 번 실질 비중을 다시 계산해 상한을 넘으면 신규 적립의 방향만 조정한다. 최근 개인들이 반도체 일변도에서 금·원전 등으로 자금을 분산하는 흐름도 같은 맥락이다. 고평가 논란에 겁먹고 한꺼번에 움직이기보다, 숫자로 선을 긋고 그 선을 지키는 쪽이 적립식 투자자에게는 더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