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여름 고점 대비 20% 넘게 밀리면서 연금저축·IRP 계좌의 평가손실이 눈에 띄게 커졌다. 다만 평가손실은 팔기 전까지 확정되지 않은 숫자이고, 적립 기간이 많이 남은 계좌에서는 급락일이 오히려 더 싸게 사 모으는 구간이 된다. 지금 확인할 것은 수익률 숫자가 아니라 주식형 비중과 은퇴까지 남은 기간, 그리고 미리 정해둔 리밸런싱 규칙이다.
11월 3일 코스피는 3.59% 내린 5,648.79로 마감했다. 미국 기술주 약세와 AI 투자 수익성 우려, 미국 중간선거 불확실성이 한꺼번에 겹쳤다. 이데일리에 실린 한국투자증권 최종진 연금혁신본부장의 7일 칼럼은 코스피가 여름 고점 대비 20% 넘게 밀렸다고 정리한다.
연금저축·IRP 계좌를 열어 보면 하루 지수 하락폭보다 내 수익률이 더 크게 꺾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계좌 안의 TDF나 주식형 펀드가 그날 시장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주식 비중이 높을수록 평가액의 출렁임도 커진다.
여기서 먼저 구분할 것이 하나 있다. 지금 보이는 빨간 숫자는 평가손실이지 실현손실이 아니다. 팔지 않는 한 그 숫자는 확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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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손실은 오늘 시세로 계산한 장부상 손실이다. 내일 시장이 오르면 숫자도 따라 바뀐다. 반면 실현손실은 실제로 팔아서 손해를 확정한 금액이다.
급락장에서 매도 버튼을 누르는 순간, 흔들리던 평가손실은 돌이킬 수 없는 실현손실로 바뀐다. 최종진 본부장은 매도가 당장의 불안은 줄여 주지만 더 어려운 숙제를 남긴다고 지적한다. 바로 "언제 다시 들어가느냐"다. 확신이 설 때를 기다리다 보면 반등 구간을 통째로 놓치기 쉽다.
연금계좌는 세제 혜택을 받는 대신 중도 인출에 불이익이 따르는, 애초에 길게 보고 설계된 돈이다. 하루치 시세로 전체 전략을 바꾸기에는 성격이 맞지 않는다.
매달 일정액을 넣는 적립식은 가격이 비쌀 때 적게, 쌀 때 많이 사게 된다. 급락일에 들어간 이번 달 납입금은 평소보다 더 많은 수량을 사 모으는 셈이다.
그래서 불안하다고 적립을 멈추면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구간을 스스로 건너뛰게 된다. 물론 적립식이 손실을 없애 주는 만능 해법은 아니다. 다만 비쌀 때 몰아서 사고 쌀 때 겁에 질려 파는 최악의 순서를 막아 주는 장치에 가깝다.
과거 닷컴 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충격 때도 시장은 결국 회복했다. 회복 속도는 자산마다 달랐지만, 꾸준히 적립을 이어간 계좌가 급락에 놀라 멈춘 계좌보다 유리했던 국면이 많았다.
같은 급락이라도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적립 기간이 수십 년 남은 30대에게 이번 하락은 긴 그래프의 작은 골에 가깝다. 반대로 2~3년 안에 연금을 받기 시작할 사람에게는 당장 돌려쓸 돈이 줄어드는 신호일 수 있다.
최종진 본부장도 은퇴가 임박한 사람과 수십 년 적립이 남은 청년에게 같은 조언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장기투자는 "기다리면 무조건 오른다"는 약속이 아니라, 자기 투자 기간과 견딜 수 있는 손실 폭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짜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급락일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수익률 숫자가 아니라 "나는 이 돈을 언제 쓸 사람인가"다.
첫째, 주식형 비중이다. 계좌에서 주식형(국내외 주식펀드, TDF 중 주식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 본다. 하락이 너무 아프게 느껴진다면 비중이 체력보다 높았다는 뜻이다.
둘째, TDF라면 목표 시점(빈티지)이 내 은퇴 연도와 맞는지 확인한다. TDF는 은퇴가 다가올수록 주식을 줄이고 채권을 늘리며 알아서 조정한다. 빈티지가 실제 은퇴 시점보다 지나치게 공격적이지 않은지만 점검하면 된다.
셋째, 코어와 새틀라이트의 균형이다. 최종진 본부장은 코어 60~70%를 TDF나 글로벌 광범위 지수에, 새틀라이트 30~40%를 반도체·AI 같은 성장 테마에 두는 구성을 예로 든다. 단 이 비율은 정답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은퇴까지 기간과 견딜 손실 폭에 따라 자기 규칙을 정하는 게 먼저다.
리밸런싱은 급락에 놀라서 하는 매매가 아니다. 미리 정한 목표 비중에서 일정 폭 이상 벗어났을 때 원래 비중으로 되돌리는 정기 점검이다.
예를 들어 주식 60%·채권 40%를 목표로 잡았다면, 급락으로 주식이 50%까지 줄었을 때 채권 일부를 팔아 주식을 다시 60%로 채운다. 결과적으로 싼 자산을 더 사게 되는 구조다. 반대로 특정 자산이 과도하게 불어났을 때 덜어내는 것도 같은 원리다.
중요한 건 이 기준을 하락장 한복판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평온할 때 "±몇 %p 벗어나면 조정한다" 같은 규칙을 정해두면, 급락일에도 감정이 아니라 규칙이 손을 움직인다.
정리하면, 지금의 평가손실은 아직 확정된 손실이 아니다. 적립 기간이 넉넉하다면 대체로 놔두는 쪽이, 만기가 가깝다면 주식 비중을 점검하는 쪽이 현실적이다. 손봐야 할 것은 수익률 숫자가 아니라 애초에 정해둔 비중과 규칙이다.